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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mon (Nigel's Monitor)
무료이나, IBM에서 공식적으로 제공하지는 않는다. 간단 명료하고 안전한 툴이며, 그래프로 벤치마크 리포트를 작성한다. 다운로드 사이트: http://www-941.haw.ibm.com/collaboration/wiki/display/WikiPtype/nmon analyser 다운: http://www-941.ibm.com/collaboration/wiki/display/WikiPtype/nmonanalyser 예를 들어, 5분 간격으로 하루(24시간)동안 돌리겠다 하면 # nmon -s 300 -c 288 -f 이라고 하면 된다. (300초 = 5분이고 5분씩 288회 = 24시간) - nmon을 어떻게 주기적으로 돌리냐에 대한 해답은 crontab에서 찾을 수 있다. nmon의 조건들을 만족 시키기 위해 cron을 이용하면 쉽게 해결할수 있다는 것이다. - cron의 문장을 해석하는 일은 어렵지 않다. 다음은 필드별 설명이다. ------ -------- --------------------------------------------------- 필 드 의 미 범 위 ------ -------- --------------------------------------------------- 첫번째 분 0-59 두번째 시 0-23 세번째 일 0-31 네번째 월 1-12 다섯번째 요일 0-7 (0 또는 7=일요일, 1=월, 2=화,...) 여섯번째 명령어 실행할 명령을 한줄로 쓴다. ------ -------- --------------------------------------------------- 예를 들어, 월요일부터 수요일까지 nmon.sh를 돌릴고자 할 때는 1-3(월-수)을 입력하여 35 16 * * 1-3 /nmon.sh 라고 쓴다. 매월 매일 월~수요일 16시 35분마다 nmon 쉘 파일을 실행한다는 입력이다. - find 커맨드 # find [경로] [-옵션] [패턴] 명령어는 찾고자 하는 파일의 위치를 알려준다. 주요 옵션은 다음과 같다. -atime [n] : 파일이 n일 전에 touch(접근)되었으면 ‘true’ -ctime [n] : 파일이 n일 전에 생성되었으면 ‘true’ -exec [command] : 명령을 실행 -mtime [n] : 파일이 n일 전에 수정되었으면 ‘true’ -name [pattern] : 패턴에 맞는 파일명이면 ‘true’ -type [file 종류] : 파일이 종류가 맞으면 ‘true’. 'd' : directory, 'f' : file, 'l' : link -user [name] : 파일의 사용자가 name이면 ‘true’ # find . -name "*.c" : 현재 디렉토리 밑에 .c로 끝나는 파일 검색 # find /usr1 -user "imp" : 파일의 소유자가 imp인 모든 파일 검색 nmon과 crontab 관련 참고 사이트: http://blog.naver.com/xrodie/10020196022
몇 주 전 내가 글을 기재하던 웹진이 공중분해 되었다. 서버 제공 업체에서 문제를 일으켰는데 DB를 복구하기도 힘들어지는 바람에, 확실치는 않지만 사실상 페이지 제작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는 것 같다. 9년간 쌓았던 각종 콘텐츠가 모두 날아갔고, 웹진과 연계되어 있는 여러 음악 관련 사업도 당분간 유지가 힘들어진 것은 당연한 결과다.
최근에 만날 기회가 없어서 면전에서 대놓고 얘기하진 않았지만, 웹 매거진을 이끈 일원의 입장에서 봤을 때 이렇게 된 데에는 운영자의 과실도 크다. 당연히 100% 웹 호스팅 업체의 잘못이긴 하지만, 웹 사이트를 운영하는 입장에서는 백업이 생활화되었어야 했다. PHP 페이지 백업은 물론이거니와, 제로보드 게시판의 정기적인 백업도 이루어졌어야 하고, mysql DB 또한 주기적인 백업이 있어야 했다. 보아하니 그랬던 것 같지가 않다. 몇 달 전에도 접속이 시원찮은 때가 많았는데, 사전에 마련한 대책이 없었다는 것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나는 그래서 웹 페이지를 운영하는 형에게 실망이 크다. 뮤직 비즈니스에 몸 담으면서 일궈낸 사업과 필수 불가결의 관계인 웹진을 그렇게 되도록 방치한 것, 그리고 한 달 여의 공백 기간을 거쳐 임시적으로 블로그 형식으로 복구시킨 것... 별로 좋아보이지 않는다. 몇 년 전에 운영하는 형이 나를 포함한 필진에게 콘텐츠를 꾸미는 것은 형이 다 알아서 할 것이니 너네는 콘텐츠만 많이 만들면 된다 - 는 식의 말씀을 하신 적이 있었다. 하지만 콘텐츠를 담는 그릇이 밑 빠진 항아리 마냥 복구 불능이 되어버렸고, 그동안 만들었던 음악 관련 콘텐츠는 시간을 두고 다시 긁어 모아야 하는 상황이 됐다. 학습 중인 서버가 윈도 서버는 아니지만, 8월부터 회사에서 서버 관리 및 유지보수와 관련된 기술을 배우고 있는 입장이라 그런지, 여러모로 씁쓸함이 묻어난다. ![]() 대학 생활을 하면서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낸 곳은 4호관 >= 정석도서관 > 하이테크센터 > 나빌레관 > 학생회관 > 5호관 순이었던 것 같다. 새내기 시절에 다수의 필수 과목을 4호관에서 수강했고, 본격적인 구직자 활동을 시작했던 4학년 마지막 학기에는 4호관 컴퓨터실 이용 시간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도서관에서 공부를 많이 한 것은 절대 아니었지만 다량의 뻘짓을 포함한다면 도서관에 간 횟수나 보낸 시간이 꽤나 많았다. 스쿨버스 승차장이 도서관 바로 뒤에 있던 것도 하나의 이유였던 것 같다. 나는 전공 과목을 심도있게 공부하는 놈이 아니었다. 소위 말하는 과 내에서 얼마 되지 않는 나이롱컴공 중 하나였다. 전공 이수 학점을 사실상 어거지로 채우면서 하이테크센터를 들락거렸고, 하이테크와 가장 가까운 후문가 혹은 친구 자취방으로 발길이 쉽게 이어지곤 했다. 근래에 학교 게시판을 가봤더니 하이테크센터의 냉난방 설계에 대한 불만이 쏟아져 나오고 있었는데, 내가 생각해봐도 하이테크라는 그럴싸한 이름값은 그다지 잘 해낸 건물은 아니었던 것 같다. 졸업을 하고도 이렇게 애착이 없으니 원... 학년이 높아지면서 나빌레관에 가는 횟수는 서서히 줄어들었다. 당연히 동아리 집행부였던 2003년에 가장 많이 들락날락거렸다. 자의반타의반으로 내 집 드나들듯이 나빌레관 302호로 향했었다. 지도 상으로만 봐도 하이테크에서 동아리까지의 거리가 꽤 되는데, 하이테크센터를 나오자 마자 번개반점에 자장면을 시키고 나빌레관에 도착하면 그 짧은 찰나에 배달이 먼저 오는 경우도 있었다. 도보 10분 정도의 거리였는데 짱깨가 10분 안에 쏜살같이 도착했다는 얘기다. 지금 생각해도 웃음만이 나온다. 그래서 또 생각이 나는데, 정석도서관에서 하이테크센터 사물함까지는 딱 Michael Jackson의 "Dangerous"(약 6~7분) 러닝타임 정도의 빠른 걸음 도보 시간이 걸렸다. 역시 순간 기억력은 꽝이지만 이렇게 무언가 연상되고 맞물려 있는 쓰잘데기 없는 추억은 생생하게 기억한다(...). MJ의 추임새를 주구장창 들으면서 앨범의 마지막 곡이 화려하게 끝날 무렵에 사물함 앞에 딱 도착하곤 했었다. 대학생 시절 조금이라도 돈을 아끼기 위해 친구들과 갖은 노력을 다 해봤다. 특히 복학생이 된 이후부터는 학생회관의 밥을 주식으로 삼았고, 1400원짜리 식판 밥이나 2000원 혹은 2200원 짜리 밥을 먹었다. 우리가 후문가 밥을 먹는 것은 1년에 몇 번만 있는 연중행사일 뿐이다! 라는 헝그리 마인드로 미친듯이 돈을 아끼며 살았는데, 그놈의 그지근성은 지금까지도 남아 있는 바람에, 최근 인턴 생활을 하면서 내는 점심값 5000~6000원이 무척 뼈아프다. 아마 지금도 학교 후문가 백반집은 3500원 정도일 것이다. 1학년 때 2500원, 2학년 때 3000원, 복학 후 언젠가부터 3500원으로 오르며 500원 인상폭을 꾸준하게 유지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하여간 처절했던 나날들이었다. 휴... 5호관에서 들었던 수많은 교양과목 중에는 뻘과목이 꽤나 많았지만, 수강 후 무언가 하나라도 껀덕지가 남는 과목도 있었다. 2008년 하반기, 대학 생활의 마지막 학기인 8학기에 수강했던 문화로배우는스페인어 같은 과목은 지금까지도 기억에 남는다. 친구와 수강하면서 교수님은 프리메라리가를 얼마나 좋아하실지에 대해 궁금해 했었는데, 종강을 앞둔 시기에 교수님께서 한일월드컵 시절 통역관 혹은 그에 준하는 일도 해봤었다는 얘길 듣고, 최근 해외축구계의 흐름에 대해서도 확실하게 알고 계신다는 사실에 (좋은 의미로) 적잖이 놀랐던 적이 있다. 한일월드컵 시절의 라울 곤잘레스 얘기를 하시다가 당시 후안데 라모스가 취임한 레알마드리드에 대한 얘기까지 자연스레 흘러갔었는데, 그렇게 유럽 축구에 관심 있는 분임을 진작에 알았다면 더 친해질 수 있었는데 내가 왜 적극적으로 다가가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당시 마누엘 페예그리니 감독이 이끌던 비야레알의 스쿼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실지 상당히 궁금했는데. 쩝. 2008년부터인가 역할을 바꾼 건물인 로스쿨관에는 졸업할 때까지 한 번도 가지 않았다. 딱히 구경할 것도 없을 테니 가봐도 미련 없다. 2008년에는 본관에서 하나의 좋은 추억을 만들었다. 소규모였지만 교내 제기차기 대회가 열려 준우승을 했다. 중학교 1학년 때 죽어라 제기차기를 했던 적이 있는데 역시 어릴적 무언가 하나라도 해둔 게 지금와서 다 도움이 되는가보다. 45개 정도 찼던 것 같은데 옆에서 끝까지 살아남은 우승자는 내가 체력이 딸리고 다리가 후들거려 더 이상 차지 못할 때까지도 여유있게 차고 있었고, 우승 확정 후 무진장 좋아하던 그 분의 여자친구 표정은 이상하게도 아직까지 기억에서 사라지지 않는다. 여하튼 4학년이라는 놈이 교양과목 수업 시간을 째고 제기차기 대회에 나가 준우승을 하고 문화상품권 3만원어치를 받았다니... 참... 그다지 큼지막한 학교는 아니지만 나의 모교에는 건물마다 나름의 추억이 담겨 있다. 시간이 흘러도 이렇게 생생하게 묘사할 수 있는 얘깃거리가 많음에 기분이 절로 좋아진다. 대학생 시절 내내 전공에 큰 관심을 두진 않았던 나이롱컴공이지만, 모교는 나름의 추억이 베어 있는 곳이기에 이따금씩 놀러 가면 좋은 시간을 보낼 수 있을 것이다.
미디어를 통해 박재범을 둘러싼 일련의 사태를 1주일 가까이 지켜봤다. 물론 아직까지도 후폭풍이 활기를 치고 있으며 후유증은 쉽게 가라앉을 것 같지 않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자면 대한민국은 참 무서운 나라라는 생각이 든다. 자국민인 내가 봐도 이건 좀 아니다 싶다. 수년 전 웹사이트에 올린 글을 이 잡듯이 추적하는 스토커의 행위에 가까운 일을 하면서 과거를 까발리고 퍼뜨리고 비난하는 것은 참 찝찝한 광경이다. 박재범이에게 잘못이 없는 것은 절대 아니지만, 과거를 들먹이며 사실상 미국으로 추방시킨 것이나 다름 없는데, 단언컨대 이것은 잘못된 것이다. 한국에서 활동하는 재미교포 출신의 아이돌 가수들에 대한 따끔한 충고 격인 사례 혹은 따끔한 시범케이스의 역할을 하는 셈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물론 고국에 대한 올바른 이해와 사상은 분명 필요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렇게 메가톤급의 압박이 있어야 한다는 말인가. 기자양반들이 박재범이 너 오늘 잘 걸렸다 요즘 엉아들이 스트레스 풀 곳이 없는데 너라도 미친듯이 까야겠다 라는 심보로 융단폭격을 했다는 느낌도 지울 수가 없고, 예나 지금이나 달라진 것이 없는 네티즌의 마녀사냥 혹은 무조건적인 비난에 크나큰 염증을 느낀다. 나도 박재범이를 두둔하고 싶은 생각은 없고 크게 관심도 없지만, 이번 사태를 통해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에서만 볼 법한 진풍경이 마치 홈쇼핑 3종세트 패키지인 양 빠바방 터져 나와서 씁쓸한 마음을 감출 수가 없다. JYP가 홈페이지에 쓴 글이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어디까지가 거짓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고, 이런 융단 폭격을 받기 직전의 박재범이의 대한민국에 대한 견해나 사상이 어떠한지도 확실하게 알 수는 없지만 그룹 리더 역할을 하던 사람을 내몰아버리고 그룹을 사실상 활동 중단 상태로 만들어버린 작금의 상황은 역겹기 그지 없다. 나처럼 네이티브 코리안이 지인과 술을 마시면서 우리 나라는 이게 문제야 이래서 안 돼 하는 식으로 늘어놓는 푸념과 그들의 한국 비하는 분명 근본 자체가 다르다. 그렇기 때문에 나 같은 사람이 아닌 재미교포 신분으로 한국에서 아이돌 가수 활동을 하는 이들에게 올바른 인성 교육이 필요하고, 현재의 인성 교육에서 개선해야 할 점도 많다. 박재범이를 통해 유년 시절의 인성 교육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에 대해 깊게 생각해보게 된다. 그치만 그보다도 변태적인 인터넷 문화와 기자들이 저지른 만행이 가져다주는 쇼크가 몇 배는 더 크다는 것을 부인하기는 힘들다. 100번을 생각해봐도 이번 일은 참으로 역겹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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